실은 밭담이 보고 싶어서였다. 둥글고 높직하게 생긴 지미봉에 오르게 된 건 그런 연유에서였다. 작게 난 오솔길을 따라 찬찬히 올랐고, 잊을만하면 뒤를 돌아 시야에 들어오는 밭담을 보았다. 오를수록 그 모습은 작게, 하지만 넓게 보였다. 중턱에 이르렀을 땐 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린 모두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약속이나 한 듯 그곳에 함께 앉아 같은 풍경을 바라보았고, 같은 바람을 쐬었다.
몹시 여름스러운 순간이었다. 매미가 쓰름쓰름 울었고, 여름 바람이 솔찬히 불어왔다. 햇볕이 대단히 무더웠지만 땀은 금세 식었다. 견줄 수 없는 풋풋함이 있었던 그 순간은 여전히 선명하다. 모든 게 생기 있었던 8월의 제주가 그러했던 것처럼.
the bom volume 06 <새로운 쓰임에 관하여> '우린 모두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중에서
글 라어진 / 사진 김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