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ee 'RE:' 신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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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구조대
안녕하세요. 듣자 하니 지구를 지키고 계시다고요(웃음).
(웃음)지구구조대, 그러니까 RE:는 ‘Rescue’의 줄임말입니다. 저는 제주에서 업사이클링 브랜드인 RE:을 운영하는 신치호라고 합니다.
RE 뒤에 붙은 ‘:’표기는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아시다시피 :는 도돌이표를 의미하잖아요. 나름대로 순환의 의미를 담은 것이죠.
처음 RE:란 이름을 들었을 때, Recycling 혹은 Reuse의 RE인 줄 알았어요.
그런 의미도 품고 있어요. 중의적인 이름이에요.
‘업사이클링’이 전보다 많이 알려졌다곤 하지만 역시 생소한 개념인 것 같아요.
업사이클링을 리사이클링과 혼동하시는 분들이 꽤 계신데요. 알고 보면 둘은 꽤 다른 개념이에요. 물건의 생애주기를 늘린다는 점에선 같지만, 사물을 대하는 방식 면에선 둘은 제법 다르거든요. 예를 들어, 가방을 샀는데 구멍이 나서 그 부분을 꿰매어 계속 사용하는 건 리사이클링이고요, 구멍 난 부분을 오히려 부각해 그 가방의 개성으로 나타날 수 있게 수선하는 건 업사이클링이에요. 소재의 물성을 여전히 사용하되 창작적 요소를 가미해 아주 다른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죠. 리사이클링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말로는 ‘새활용’이라고 한다면서요?
네. 업사이클의 순화어에요. 인간이 선사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아무런 소비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순 없거든요. 자연을 일정 부분 사용해야 하는 거죠. 또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기도 하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무분별한 훼손이 수용된다는 건 아니에요. 저는 그런 모습들을 보며 유감을 느꼈던 거고, 자연을 이용해 만들어진 물건들의 생애 주기를 좀 늘려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하게 된 거예요. 최고의 선택이 아닌 최선의 선택을 하자는 거죠. 자연과 인간 사이의 적절한 황금률을 찾아서.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생긴 것과 다르게 되게 아기자기하고 예쁘장한 걸 좋아해요(웃음). 혼자 앉아서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요. 이쪽 일을 처음 하게 된 건, 예전에 혼자 동네를 산책하다가 물건을 주워와 취미 삼아 리폼하곤 했는데 지인들이 자꾸 팔아보라고 하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처음 목공, 철공을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하다 보니 흥미롭더라고요. 그래서 맘껏 나름의 실습을 할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생각하다 고물상에 일자리를 얻은 거죠. 거기 가면 정말 어마어마한 고물들이 쌓여 있는데, 저한텐 쓰레기가 아닌 너무 좋은 학습도구들이었어요. 제 마음대로 맘껏 녹여도 보고 태워도 보고 붙여도 보고했으니 일하면서 소재에 관해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되었죠. 물론 일의 강도는 (제가 고운 일만 하면서 자란 사람이 아님에도) 정말 힘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해도 너무 잘한 경험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좋은 시절을 만난 것 같아요. 예전 같았으면 팔자가 사나운 사람이었을 텐데 이런 경험이 쓰일 수 있는 분야가 세상에 많이 나왔으니까요.
‘아름다운가게’에서도 일을 하셨다면서요?
고물상에서 나온 이후로 조금 더 체계가 잡힌 곳에서 제대로 일을 배워보고 싶어졌어요. 그렇게 들어가게 된 게 아름다운가게고요. 아름다운 가게는 시민들이 기증한 물건들을 수선해서 팔고 좋은 곳에 사용하잖아요. 근데 판매가 아예 불가한 물건들도 종종 들어온단 말이죠. 그런 물건들을 담당하는 ‘에코파티 메아리’란 부서에서 일했어요. 처음으로 체계가 잡힌 곳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배울 수 있었는데 소위 말하는 이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웃음). 그렇게 배우다 보니 자연스레 창업에 대한 열정이 생겼고, 일 년 정도의 시간 동안 준비과정을 거친 후 RE:를 론칭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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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을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현재 RE:는 어떤 일을 하나요?
RE:는 업사이클링 목재의 새로운 이름 Fair-Wood로 디자인 소품 및 가구 제작, 인테리어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제주에 계신 디자이너분들을 포함한 다방면의 기술자분들과 협업을 하는 형태고요. 흔히 쓰레기를 재활용, 새활용한 작품이라고 하면 디자인적으로 많이 도태된다는 인식을 갖고 계시는데, 그런 부분을 보완하고 개선해 나가기 위해서 디자인적으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장식성을 최대한 배제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되 납득이 가는 디자인을 만들자는 그런.
폐목재는 모두 어디서 가져오는 건가요?
초창기엔 많이 주우러 다녔죠. 제주에 연고가 있었던 게 아니므로 쓰레기 처리장이건 어디건 발품 팔아 얻어왔어요. 지금은 아시다시피 제주도가 건축 열풍이 대단하여서 여러 철거업체에서 건물을 뜯는 과정에서 나온 쓸 만한 목재나 유리가 있으면 먼저 연락을 주셔요. 그분들도 평소에 나무가 그냥 버려지는 게 아깝다고 생각하시던 차에 저희를 알게 된 거죠. 최근엔 도움을 주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감사한 일이죠
그런 걸 보면 확실히 인식이 개선된 것 같아요.
맞아요. 미세먼지다 사막화다 말이 많잖아요. 이게 환경이 직접 생활에 간섭을 해오니 ‘이게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구나!’싶은 거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업사이클링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것 같고요.
확실히 전에 비해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는 추세예요. 아쉬운 게 있다면 이 관심이 일정 부분 트랜드로써 작동하고 있다는 거예요. 업사이클링은 사물을 대하는 마음가짐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맞다고 보는데, 대부분 기발함에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업사이클링을 하다 보면 재구성하는 것보다 그냥 낡은, 그 상태를 그대로 두는 게 더 나은 경우도 생기기 마련인데 심지어 빈티지한 느낌을 내기 위해 오히려 쓰레기를 발굴하는 추세예요(웃음). 결국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업사이클링 본질을 아우를 수 있는 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반짝이는 아이디로만 커버하는 건 조금 위험한 일인 것 같아서요.
너무 디자인 쪽으로만 치중되는 게 걱정되시는 거죠?
디자인은 너무 중요한 요소지만 디자인만 추종하는 건 옳지 않다는 거죠. 저 역시 숟가락이나 젓가락으로 형태를 변형해 작품을 만들기도 해요. 그걸 보고 어떤 사람들은 그러죠. 철은 녹여서 다시 쓰면 재활용이 되는데 그걸 왜 굳이 작품화시키며 업사이클링 명분을 갖다 붙이느냐고요. 근데 수저를 수집하고 거대한 차에 한가득 모아 철광소에 가지고 가 녹이고, 또다시 철로 만드는 데 되게 많은 프로세스와 비용이 들어가거든요. 그건 다 기름이고 석유이기 때문에 오히려 제가 돈 들이지 않고 새로운 쓰임을 만들 수 있다면 그 방법을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결국, 융통성의 문제네요.
융통성의 문제죠. 더욱이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단순히 관람용 오브제가 아닌 우리 일상에 필요한 제품으로 재사용 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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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게
또, 자연스럽게
앞으로 RE:가 개선 혹은 만들어 나가야 할 인식들이 무궁무진하네요.
그런 것 같네요(웃음). 근데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쓰레기로 만들어진 결과물’에 대한 반감을 줄여나가는 일이에요. 요즘은 그래도 업사이클링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기도 했고, 깨어 있는 사람들이 많아 거부감은 제법 사라졌지만, 여전히 판매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거든요. 다들 신기하다며 사진 찍고 구경은 하지만 정작 집에 가져가고 싶진 않은? 한국이 특히 새것에 대한 집착이 남다른 민족이기 때문에 더 어려운 부분도 있어요. 외국 같은 경우는 중고물품 거래가 정말 활발하거든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고.
‘한국에서 친구와 절교하고 싶을 때 선물하면 좋은 세 가지’가 뭔지 아세요? 덮고 자던 이불, 쓰던 숟가락, 입던 속옷(웃음). “내가 입던 속옷인데 가질래? 구멍이 좀 나서 그렇지 명품이야.”하면 친구가 속으로 생각하겠죠. ‘아, 얘 나랑 이제 그만 보고 싶구나.’
(웃음)그런데 속옷은 좀 심한 거 아닌가요.
(웃음)실제로 영국의 옵샵(Opportunity Shop)에선 속옷도 판매한다니까요. 한국 정서에 너무 어긋나는 일이라 그렇지 외국에선 제법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 인식의 차이를 줄이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선 어떤 일을 할 수 있나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사용감을 전해주는 거요. 그게 가장 빠르고 또 바른길인 것 같아요. 아무리 ‘저희 제품은 쓰레기로 만들어졌지만, 냄새도 나지 않고 깨끗해요. 또 디자인적 요소도 신경 썼고요.’라고 설득해봤자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아요. 결국, 인식을 가장 빠르게 변화시키는 수단은 사용감이에요. 써보고 좋으면 그게 또 다른 구매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렇담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려면 홍보가 어느 정도 필요할 것 같아요.
필요한 부분이죠. 특히 판로를 가지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판로가 없으면 어떤 웰메이드 작품일지언정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죠.
판로를 개척하는 일이라.
최근 쇼룸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예요. 작은 공간이지만 같은 일을 하는 업사이클러들과 그 공간을 채워나갈 예정이에요. 보통 편집숍에 작품을 입점하려면 높은 수수료 때문에 가격이 왜곡되는 경우가 허다하잖아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저희가 만들 그 공간에선 그런 모순적인 일은 없을 거예요. 업사이클링 작가들이 순수한 마음 하나로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앞으로의 작업들도 기대돼요.
보는 사람들에게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으려는 게 아닌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그러니깐 신기하고 대단한 걸 넘어서 누군가에게 생각의 여지를 던져 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the bom volume 06 <새로운 쓰임에 관하여> '지구를 위한 두 번째 선택' 중에서
글 라어진 / 사진 김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