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서 사자구, 저 가게 좋아보이는데."
얼마전 아들 면회갈 때의 일이다. 지난 봄에 군에 간 아들은 유독 귤을 좋아해 가을이 되면 귤을 입에 달고 살았다. 군대 가고 처음 맞는 가을. 아들에게 맛있는 귤을 선물로 주고 싶었다. 마침 군대 들어가는 길에 슈퍼가 있었다. 행복슈퍼라는 이름이었다. 택시 기사에게 부탁해 잠시 차를 멈춘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그러지요. 뭐."
아내가 택시 문을 열었다. 언제나 물건을 사는 일은 아내의 몫이었다. 아내는 가게 문 앞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보통 '미세요'라고 적힌 자리에 '행복을 미세요.'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것이었지만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아내는 가게로 들어가 귤과 음료수를 한 상자씩 샀다. 총각으로 보이는 20대 청년에게 값을 묻고 부르는 대로 돈을 줬다. 아내는 가게를 보는 청년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이제 곧 면회하게 될 아들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청년이 물건을 택시 뒤쪽 트렁크에다 실었다. 그는 택시 안으로 들어가는 손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허리 굽혀 했다. 그때였다. 택시 문 닫히는 소리와 택시 뒤쪽 트렁크를 손바닥으로 다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겹쳤다. 운전사가 창문을 내렸다.
"잠깐만요. 손님."
어디서 달려왔는지 숨을 헐떡이며 50대 중반쯤 됐을가 싶은 남자가
"미안합니다. 트렁크 문 좀 열어주십시오. 지금 귤 한 상자를 사셨지요? 아, 참 제가 가게 주인입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상자 좀 꺼내 볼게요."
그러더니 가게 주인은 대답도 듣지 않고 트렁크쪽으로 갔다.
"물건 값이 잘못된 건가?"
아내가 혼잣말을 했다. 아들이 값을 잘못 말했는지도 모른다.
"돈은 잘 셌어?"
"그럼요. 내가 아무리..."
"아들놈 생각에 정신이 팔려서 천원짜리가 만원짜리로 보인 건 아니겠지?"
아내가 택시 문을 열었다. 가게 주인은 귤상자를 가게 안으로 도로 들여가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미안합니다."
아내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죄송합니다. 금방이면 됩니다."
가게 주인은 벌써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는 귤을 바닥에 쏟았다. 그런 다음 그는 귤 하나하나를 살펴가며 도로 상자에 담고 있었다. 잠깐이면 된다는 말과는 달리 시간이 꽤 걸렸다.
아내는 가게 주인의 행동이 물건값과 상관없는 것 같았으며 또한 말없이 귤을 살펴가며 도로 담고 있는 행동이 궁금하기도 해서 기다리기로 했다. 택시는 전세를 냈기 때문에 운전사 눈치를 볼 일은 없었다.
바닥에 쏟았던 귤 한 상자가 다섯 개만 남고 도로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그 다섯 개를 두 손바닥으로 받쳐 들고 아내에게 보여주며 주인은 말했다.
"이건 상한 것입니다. 다섯 개 다 곯았습니다."
가게 주인은 옆의 상자를 뜯어 성한 귤 다섯 개를 꺼내어 열어 놓은 상자에 넣고 새 것을 다섯 개 채웠다. 그러면서 그는 물건을 판 아들을 가볍게 나무랐다.
"상자째 판다고 손님에게 그냥 드려서 안된다고 했잖니? 생산지의 것이 아니라 행복 슈퍼의 귤이야."
가게 주인은 귤상자를 정중하게 택시의 트렁크에 실어주었다.
"오래 지체하게 해 정말 죄송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불쾌하셨을 줄 압니다. 용서하십시오."
가게 주인은 택시에 앉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뭐라고 더 말을 하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보니
"행복하십시오."
하는 말이었다.
월간 낮은울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