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안 먹을란다.”
엄마가 밥상을 무른 후 방에서 비상 가족 회의가 열렸다. 큰오빠, 작은 오빠, 큰언니, 둘째 언니는 모두 심각한 얼굴이었다. 새언니들과 형부도 그랬다.
“오빠, 대체 내가 신혼 여행 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결혼식 때만 해도 밥도 잘 드셨잖아. 무슨 일 있었어?”
내 물음에 오빠는 새언니를 바라보았다.
“여보, 당신 뭐 좀 알고 있어?” 새언니도 고개를 젓는다.
“아뇨. 아무 일도 없었어요. 다만 결혼식 끝나고 피곤해하시는 것 같아서 쉬시라고 했어요. 아가씨 결혼하고 내리 삼일 동안 친구도 안 만나시고 집에만 계셨잖아요.”
잘 모르겠지만 내 결혼 이후에 엄마가 변한 게 확실했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고, 발바닥에 땀나도록 돌아다니셨던 엄마. 그 여장부 같던 엄마가 이젠 늙으신 걸까?
내가 한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아빠는 세상을 떠났다. 교통 사고, 그것도 뺑소니라 보상금 하나 받지 못하는 교통 사고였다. 그 때부터 엄마는 정말 억척스럽게 우리를 키우셨다. 엄마는 종합병원 만능 전문의였다. 우리가 아프면 산으로 들로 약초를 캐러 다녔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바늘로 손이며 발가락을 따 주기도 했다. 제대로 된 음식이 없을 때는 나물이라도 캐서 먹였고, 밥이 모자랄 때는 죽이라도 끓여 키워 주셨다.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고, 울지 않고 잠든 날이 없었지만 엄마는 한 번도 쓰러지지 않았고. 그런 엄마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보란 듯이 성공해서 잘 살고 있다.
“내가 엄마랑 이야기해 볼게.”
결국 언니 오빠들 중 어느 누구도 엄마가 밥 안 먹는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고, 그 이유를 알아내야 하는 십자가를 지게 된 나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엄마 방을 노크했다. 엄마는 힘없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예전에 그렇게 씩씩하던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 무슨 일 있는 거야? 왜 밥은 안 먹어?”
내 말에 엄마는 고개를 천천히 들면서 말했다.
“이젠 쉬어야겠다.”
“쉬어도 밥은 먹으며 쉬어야 할 것 아니야.”
그러자 엄마는 자리에 천천히 누우며
“내 평생에 한 번도 입맛이 돌아서 밥 먹은 적이 없어야. 그냥 어디에 힘을 써야 하니까 꾸역꾸역 밥맛없어도 먹은 것이지. 그런데 이제 막내인 너 시집보내고 나니 이젠 힘쓸 데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엄...마.”
“괜찮다 걱정 마.”
“나 시집보낸 거 후회해? 결혼 취소하고 다시 엄마랑 살까?”
“얘는... 그냥 좀 쉬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억지로는 안 먹겠다는 거지 아예 안 먹겠다는 건 아니잖아. 조금만 쉬고 나서 힘쓸 일이 생기면 또 먹을게 응?”
“엄마, 나 시집가고 나니까 허전해서 그러는 거 다 알아. 그래도 아주 떠난 거 아니잖아. 그리고 금방 아기 가질거야. 엄마가 키워줘야 해. 요새 얘들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러니까 엄마 식사 거르지 말고 꼭 드셔야 해요. 응?”
[월간 낮은울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