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이 차오르는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아끈다랑쉬오름
신비의 화구 속엔 은빛 색으로 물든 연륜의 억새군락이 살고 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억새들은 불어오는 바람에도 그저 유하다. 때론 말없이 고개를 숙이는 것이 멋져 보일 때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건지 억새군락은 어째 말이 없다.
제주 말로 ‘아끈’이란 ‘작은’을 의미한다. 이름만치 소박한 아끈다랑쉬오름은 비고가 58m에 불과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쉽게 오를 수 있다. 지천에 깔린 억새 줄기 사이로 서걱서걱 소리가 난다. 사람 키만큼 훌쩍 자라버린 억새 숲 사이로 살짝살짝 얼굴을 내미는 햇빛이 영롱하다. 정상에 다다르면 외톨이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 옆에 서서 은빛 물결을 보고 있자니 마음의 봉인이 해제되는듯하다. 웬만해선 감정을 기록하지 않는 사람들도 어쩔 수 없는 풍경 앞에 마음이 그렁그렁해진다. 그렇게 이곳에선 누구나 시인이 된다.
<the bom> Volulme 03 | 가을이 머문 자리 '겨울바람이 차오르는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아끈다랑쉬오름'中
글/사진 더봄 편집팀 / 매거진 더봄 www.thebom4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