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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ume 05 | 취하리(里)의 잠 못 이루는 밤, 2016

by thebom posted Sep 0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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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드라마, 휴먼, 판타지, 로맨스 

출연 | 펍챠우(월정리), 윌라라(성산리)
등급 | 청소년 관람 불가
줄거리 | 맥주 몇 모금에 정신이 금세 아렴풋해졌다. 어느새 몸을 휘감은 알알한 취기가 유쾌하다. 조금만 마시면 금방 들통 날 마음을 부여잡고 모여 앉은 밤. 얼마 안 가 잊어버릴 게 뻔한 시답잖은 농담부터 고대의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를 소환한 철학 토크, 전에 없던 담대함에 빌어 던져보는 속 이야기까지. 그야말로 장르 불문이다. 이 유연한 넘나듦을 가능케 한 건 단연 술의 덕택이었지. 이런 점에서 술은 가장 쉽고 만만한 일탈인 것이다. 술이 가진 보편적 인상이 무색하게, 술은 사람을 좀 더 순수하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한 잔 두 잔 마시면 마실수록 순수한 마음만 걸러지는 것이다. 그 마음을 두고 그 누가 찌질하다 말할 수 있을까. 



펍챠우3-v2.jpg


월정리

PUB챠우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이 매력적인 공간을 공유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한 장소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못된 마음도 든다. 나만 알고 있던 가수가 대중에게 알려졌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 테지. 어쩔 수 없이 서운한 일이다.



밥 말리와 체 게바라가 주는 느낌

펍챠우는 알고 보면 사실은 ‘짜이(또는 차이)’ 전문점이다. 짜이는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 지역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있는 차를 일컫는데, 홍차에 우유, 서랑, 향신료 등을 넣어 만든 인도식 밀크티로 잘 알려져 있다.

외벽에 그려진 체 게바라와 밥 말리의 그림, 드림캐처, 오래된 약국 의자와 간판, 모닥불, 무심하게 자란 잡초들로부터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말하는 펍챠우의 ‘그런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주인장은 ‘이런 분위기의 가게들이야 뭐, 다 밥 말리나 체 게바라 그림 하나씩은 있지 않냐, 꾸미지 않은 느낌도 어쨌든 다 꾸민 거다’라며 무심하게 말하지만, 그런 솔직함이 가게 곳곳에서 묻어나 좋았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아무에게나 열려 있진 않은

짜이와 칵테일 수입 맥주를 주로 하는 펍챠우에선 누구나 메뉴를 고르다 실소를 터뜨리게 된다. 칵테일 메뉴 중 하나인 ‘너 이제 육지 못 가’와 마땅히 생각나는 이름이 없어 붙인 ‘이름은 미정이’가 그중 하나다. 또 하나의 특이사항이라 함은 안주를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끔은 ‘무슨 술집이 안주도 없냐’며 심술을 부리는 손님도 종종 있기 마련. 그럴 때면 주인장은 대신 주변에 맛있는 안주를 파는 술집을 추천해준다. 안주를 팔지 않다 보니 수입 면에서는 늘 부족한 상황이지만, 지금의 방식을 고수하는 건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아무에게나 열려 있진 않은 장소’이길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닐까.


 


윌라라1-v2.jpg



성산리 

윌라라


술이 있는 곳이 모두 유쾌한 것은 아니겠지만, 유쾌한 장소엔 술이 있기 마련이다. 생김새만큼이나 다른 성격을 가진 세 남자가 모여 만든 윌라라는 그 이름부터 명랑함이 느껴졌다. 밖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호탕한 이 남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외국판 치맥

성산일출봉 근처에 위치한 윌라라는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를 전문으로 하는 가게다. 피시 앤 칩스는 대구나 가자미 등의 흰살생선을 이용한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을 함께 곁들여 먹는 영국의 대표 음식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선 다소 생소한 음식이지만 유럽과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나라에서는 우리나라의 치킨에 버금갈 정도로 사랑받는 음식이다. 윌라라는 이런 피시 앤 칩스가 주는 이국적인 즐거움을 제주에서 풀어냈다. 

“통의 피시 앤 칩스 외에도 제주 특산물인 달고기를 이용해 제주만의 피시 앤 칩스를 만들어보았는데, 인기가 좋아요. 오히려 외국 손님들이 더 좋아해 주시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Ask Whatever!

가게 입구에 놓인 서핑 보드 하며, 호주 국기가 그려진 나무 의자 하며, 예상은 했지만 역시 주인장은 호주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사실 윌라라는 이름은 주인장이 호주에서 지내던 시절 렌트했던 아파트의 이름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만났던 인연과 제주에서의 새로운 인연이 이어져 와 지금의 윌라라가 만들어진 것.

“윌라라는 그런 의미인 것 같아요. 아파트는 그냥 한낱 이름일 뿐이고, 진짜 의미는 재미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 계속적으로 인연이 생겨나고 스토리가 생기고 그게 어떤 형태로든 발전해나가는. 그러니 피시 앤 칩스나 맥주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부담 없이 들러주시면 돼요. 들어와서 구경해도 좋고, 느닷없이 대화를 나누어도, 여행에 관련된 것을 물어봐도 좋아요. 길, 버스 노선, 밥집, 숙소, 다 괜찮아요(웃음). 음식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Visitor Centre와 같은 공간으로 인식해주셨으면 좋겠네요(웃음).”


 

 

the bom volume 05 <Classic Summer> '취하리(里)의 잠 못 이루는 밤, 2016' 중에서

 라어진 / 사진 김보경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Spring / Summer 2016

Volume 05 | Classic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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