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채도의 일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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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 「지난날」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1987
지나간 날들엔 어쩐지 연한 회갈색의 막이 씌워진 것만 같다.
흐릿하지만 가습기의 여린 수증기만큼이나 촉촉한 날들.
그날의 나는 향긋한 음악을 들으며 장을 보러 간다거나 나지막한 공기가 내려앉은
헌책방에 들러 기척 없는 오후를 보내는 어디 하나 별난 구석이 없는 보통의 날을 살고 있지만,
지나간 것들엔 그것만의 무언가가 있다. 그대로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글 라어진
유재하 「지난날」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1987
지난 옛 일 모두 기쁨이라고 하면서도
아픈 기억 찾아 헤매이는 건 왜일까
가슴 깊이 남은 건 때늦은 후회
덧없는 듯 쓴 웃음으로 지난온 날들을 돌아보네
예전처럼 돌이킬 순 없다고 하면서도
문득 문득 흐뭇함에 젖는 건 왜 일까
그대로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세상사람 얘기하듯이 옛 추억이란 아름다운 것
다시 못 올 지난 날을 난 꾸밈없이 영원히 간직하리
그리움을 가득 안은채 가버린 지난 날
언제 어디 누가 이유라는 탓하면 뭘 해
잘했었건 못했었건 간에
그대로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세상사람 얘기하듯이 옛추억이란 아름다운 것
다시 못 올 지난 날을 난 꾸밈없이 영원히 간직하리
아쉬움을 가득 안은채 가버린 지난 날
잊지 못할 그 추억속에 난 우리들의 미래를 비춰보리
하루하루 더욱 새로웁게 그대와 나의 지난 날
생각 없이 헛되이 지낸다고 하지 말아요
그렇다고 변하는 것은 아닐테니까 지난 날
시대가 지나도 퇴색되지 않을 것들에겐
이 세상엔 너무 뻔하면서도 뻔하지 않은 것들이 있잖아.
말하자면 사랑, 추억, 우정, 가족과 같은. 사실 이 모든 주제들이 내겐 너무 익숙했던 거야. 이런 것들로부터 내 삶이 종종 크게 동요되기도 했지만, 또 언제는 너무 식상하게 느껴져 주변에 존재하는지조차 인지하지 못 했거든. 그러니깐 좋게 말해 친근했던 거고, 나쁘게 말해 감흥이 없었던 거지. 하지만 분명한 건 식상하다 여긴 이 마음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거야. 지금은 모든 것에 무뎌진 나지만, 언제까지나 한시적인 것일 뿐일 테지.
지난 여름날 떠난 여행의 기록물을 되새기며 그리움 섞인 넋두리를 두는 것, 내가 질려 더 이상 입지 않는 옷을 걸친 엄마를 보며 답답한 속상함을 느끼는 것, 언제부턴가 신경이 쓰이게 된 사람에게서 온 문자 한 통에 하루가 휘청하는 것. 모두가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것들이야. 아무래도 시대가 지나도 퇴색되지 않을 것들에겐 알 수 없는 회귀본능이 있는 것만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