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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ume 02 | 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

by thebom posted Aug 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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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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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가을

 

 

그녀는 계절 속에 산다. 

혼자만의 작은 밥상을 차릴 뿐인데

모든 과정이 진지하다. 

영화는 숲과 음식과 그녀의 풍경을

 

고요하게 응시한다.

 

글  서인하    일러스트  권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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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맛, 숲의 요리들

 

“우리 집은 계곡과 숲과 논으로 둘러싸여있다.” 영화에서 주인공 이치코는 이렇게 말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2014)은 여름과 가을을 배경으로 산골마을 코모리에 사는 이치코의 푸드라이프를 담는다. 작은 구멍가게 하나 없어 장을 보려면 멀리 시내로 나가야 하는 외딴 마을에서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은 자급자족. 그녀는 홀로 땅을 일궈 작물을 키우고 산과 숲에서 얻은 제철 재료로 정갈한 식탁을 차린다.

 

영화는 여름에서 시작한다. 장마철 꿉꿉한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스토브에 통밀빵을 구워 먹고, 논일을 마치고 돌아와 시원하게 마실 식혜를 담그고, 집 옆에 있는 수유열매로 잼을 만들고, 개암나무열매를 주워 누텔라를 만들고, 곤들매기를 잡아 구워 먹고, 계곡에 난 멍울풀을 조리해 밥에 얹어먹고, 토마토를 수확해 홀토마토를 만든다. 

 

가을에는 으름을 튀겨 만든 요리를 벼 베기 때 도시락으로 가져가고, 동물들과 사이좋게 호두를 주워서 호두밥을 만들고, 양식장이 개장하기 전 곤들매기를 잡아 생선자반을 만들고, 저마다의 밤조림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먹고, 추위에 약한 고구마를 수확하여 말려두었다가 구워먹고, 여름에 논에 풀어두었던 청둥오리를 잡아 구워먹고, 밭에서 시금치를 뽑아 소태를 만들어 스튜와 곁들여 먹는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녀가 만드는 요리들은 영화의 주요한 이야기가 된다. 영화의 절반은 여름, 나머지 반은 가을을 담고 각각 7개의 음식을 소개한다. 하지만 단순히 음식 뿐 아니라 계절에 따른 자연의 풍경, 농사를 짓거나 재료를 구하는 과정, 음식을 요리하고 먹는 일상의 풍경까지, 그야말로 삶의 모든 것을 담는다. 그래서인지 여름과 가을의 이야기는 옴니버스 영화처럼 독립해 있으면서도 연작시처럼 이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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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사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은 언뜻 보면 다큐멘터리 같다. 하나의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들이 특별한 서사 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치코는 주인공이지만 요리와 자연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듯하다. 영화 내내 이야기를 끌고 가는 그녀의 내레이션도 그녀에 대해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차려내는 식탁 사이사이에서 무심코 뱉어낸 그녀의 독백들을 이어보면 작은 이야기가 완성된다. 

그녀는 산골마을 코모리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적 엄마는 그녀에게 자연에서 구한 재료들로 맛있는 요리를 해주었다. 잠시 마을에 나가 남자와 살았던 적이 있지만, 다시 코모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조금 갈등하고 있다. 코모리에 정착할지 다른 곳으로 떠날지. 어쨌든 그녀는 현재 코모리에서 밭을 일구고 자연에서 식재료를 구해 한 끼, 한 끼를 챙겨먹는다. 소박하고 군침 도는 그녀의 요리들의 발원지는 엄마의 레시피이다. 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5년 전 이치코를 홀로 남겨두고 갑자기 집을 나갔다. 그녀는 홀로 그녀만의 작은 숲에 살고 있다.

영화는 그녀가 도시에서 살다가 왜 다시 고향마을로 왔는지, 엄마는 왜 떠나갔으며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등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나마 그녀의 내면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장면이 있다면 그녀와 유우타가 만났을 때이다. 유우타도 그녀처럼 마을에 나가 살다가 고향에 돌아온 청년이다.

“자신이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하며 배운 것. 자신이 진짜 말할 수 있는 건 그런 거잖아. 그런 걸 많이 가진 사람을 존경하고 믿어.”

 

유우타의 말을 들으며 그가 자기인생을 마주하려고 돌아온 것 같다고 생각한 그녀는 이렇게 독백한다. “난 도망쳐 왔다.”라고. 약간 비겁해보일지 모르지만 영화는 그렇게 말할 뿐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녀가 정확히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영화에서 과연 필요할까? 그녀가 땀 흘려 일구는 작물들과 묵묵히 만들어내는 요리들을 보면 그런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심은 대로 거두는 삶과 계절이 듬뿍 담긴 정성어린 요리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직한 삶’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녀는 유우타가 존경하고 믿는다는 사람과 닮았다.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느끼고 생각하며 배우는 것을 많이 가진 사람.’ 영화는 그녀가 직접 체험하며 깨달은 삶의 지혜들로 가득하다. 농사짓는 법, 소박하고 알찬 요리를 하는 것 뿐 아니라,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알며, 자기 자신뿐 아니라 긴꼬리나방, 장수풍뎅이, 반딧불이 등의 곤충과 곰, 다람쥐, 고양이 등의 동물과 함께 사는 법까지 아는 그녀. 그녀가 바라본 하늘과 나즈막이 읊어주는 풍경이 어른거린다. 그녀는 리틀 포레스트에서 계절과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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