母女가 함께 있는 그림
-
일본 교토 국립 근대미술관 ‘메리 카사트’ 展 리뷰
모성애,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감정을
유려히 그려낸 여류 화가 메리 카사트.
일본 교토의 한 한적한 미술관에서 그녀의 회고전이 열렸다.
글 라어진 사진 김보경
파리에서 뮤즈를 갖다 -
인생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낸 미국의 여류 화가 메리 카사트(Mary Cassatt, 1844. 05. 22. - 1926. 06. 14). 그녀는 ‘교육이 곧 여행’에 빗대어지는 이상적인 환경에서 자라왔다. 덕분에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주요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삶의 일부분을 소요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단연 프랑스 파리였는데, 그곳에서 그녀의 뮤즈 에드가 드가(Edgar Degas, 프랑스 근대를 대표하는 화가)를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드가를 포함한 인상파 화가들과 친분을 쌓아 전시회를 열게 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그녀는 드가의 색채법을 무척 동경했다. 그녀가 말하기를, “나는 1875년 갤러리 창문으로 보았던 드가의 작품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틈만 나면 그곳에 찾아가 코가 납작해질 지경에 이르도록 창문에 붙어 그의 작품을 보았고, 그의 작품이 주는 모든 느낌을 흡수하려 했다. 이것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내가 원했던 그림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라고 술회하였다. 그녀의 그림에서 알게 모르게 드가의 화법이 느껴지는 게 기분 탓은 아닌 것이다.
유일한 감정을 그리는 일 -
메리 카사트가 살았던 시대는 여성에게 그다지 후한 시대는 아니었다. 각종 대외활동 뿐 아니라 작품의 소재에도 제한이 많았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여 화가가 집이라는 실내 공간에 머물며 일상생활을 그림으로 옮기기 시작한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녀의 대표작 ‘조는 아이를 씻기는 어머니’, ‘파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어린 소녀’ 등의 작품명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그녀는 여성과 아이의 가장 사적인 일상을 주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사실 예술을 하기 위해선 독신의 삶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라 믿어 결혼마저 하지 않았던 그녀다. 그런 그녀가 경험해보지 못 한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잡아낸 것이 한편으론 놀라울 따름이지만, 남성이 넘볼 수 없는 미지의 감정을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녀가 남긴 궤적은 더욱 의미를 갖는다.
일본적 취향 - 자포니즘(Japonism),
일본적 취향을 향유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양 미술 특히 유럽에선 일본풍 미술이 큰 인기를 끌었다. 빈센트 반 고흐를 포함해 그 시기 유럽의 화가 중 일본 미술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예술계에선 큰 기류의 변화였다. 그녀 역시 일본 미술이 주는 담백함과 명료함에 크게 매료되었다. 후기 작품에서 나타나는 극단적 사실주의 묘사법과 평면적 색채 활용, 뚜렷한 명암 대비와 윤곽선 등은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오후의 차 모임’, ‘편지’ 등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구도와 화려하지만 차분한 문양들에서 그녀가 품었던 일본미술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일본 교토에서 열린 그녀의 회고전은 유난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전시회에선 그녀와 예술적 동지애를 나누었던 19세기 인상파 화가 에드가 드가, 에바 곤살레스, 베르트 모리조, 마리 브라크몽의 작품과 그녀가 사랑했던 일본 화가 기타가와 우타마로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작품도 함께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열렬히 사랑했던 모든 영감을 한 데 모아둔 이곳에서 그녀의 정성 어린 시선을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