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에 우울을 더하자
“소리가 굉장히 쓸쓸해.”
“맞아. 이 쓸쓸한 소리가 쓸쓸한 기분을 위로해주는 거야.”
“하지만 쓸쓸할 땐 즐거운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건 있지, 뭔가에 걸려 넘어져 화가 났을 때 일부러 다시 한 번 굴러보면
조금은 유쾌한 기분이 되는 거랑 비슷한 거야.”
보노보노 中
글 라어진 일러스트 권예원
실은 나도 그래
이따금 세상이 사라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날이 있다. “아무래도 세상 모든 것이 나를 미워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는 이럴 순 없는 거지.” 그렇게 손 쓸 수 없는 어둠에 갇히던 날, 내게 일말의 위로가 되었던 건 친한 친구의 “괜찮아?”라기 보다는 데면데면하던 친구의 담백한 공감이었다.
“실은 나도 그래.”
그 순간 갑자기 좋은 친구를 얻을 것만 같더니 세상이 다시 조금씩 조금씩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타이밍
솔직히 말해 깊은 절망에 빠지면 행복한 집단의 사람들을 보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이건 나와 다른 기분 속에 빠져있는 그들의 ‘들뜸’에 질투를 느껴서라기보다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네지 못함의 문제다. 스스로 ‘나는 몹시 모가 난 사람인가’하는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슬퍼지니까. 하지만 실은 모두가 그렇다. 많은 경우 삐뚤어진 마음의 문제라기보다는 다만 타이밍의 문제인 것이니. 슬픈 마음이든 즐거운 마음이든 마음에겐 언제나 비슷하게 생긴 마음이 필요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