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T WAIT FOR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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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ch Boys 「Surfin’ U.S.A.」
누군가 내게 땀만 나는 여름을 왜 좋아하냐고 물었다.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땀나는 여름을 좋아한다기보다
땀 흘리고 나서 하는 샤워가 좋다고 말했다.
샤워 후 햇빛에 바싹 마른 면 티셔츠로 갈아입고선
선풍기와 마주 앉아 냉녹차를 마시는 건 더 좋다고 그랬다.
글 라어진 일러스트 권예원
얼마 전 미국의 로큰롤 밴드 ‘비치 보이스’의 첫 내한 공연이 있었다. 비치 보이스는 비틀스, 롤링 스톤즈, 밥 딜런,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거론되는 그룹이다(국내에선 해가 길어지는 철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surfin U.S.A, all summer long, fun, fun, fun과 같은 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초반. 당시 팝 음악 시장은 미국 동부인 뉴욕과 필라델피아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고도성장으로부터의 경제적 풍요, 전쟁 없는 정치 안정기 속에서 어떤 것이든 이룰 수 있다는 긍정과 낙관 그리고 쾌락의 정서가 넓게 퍼져 있었다. 그런 지역에서 낙관적인 사운드가 조명을 받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서프(Surf) 음악의 대중화, 생기 넘치는 서핀 음악이 유행처럼 번져나간 것도 그 즘의 일. 레코드 산업의 중심지 역시 동부에서 캘리포니아가 위치한 서부로 넘어가게 된다. 미국 서해안 젊은이들의 정서가 밴 그 문화의 중심엔 비치 보이스가 있었다. 1962년 발표한 첫 앨범 surfin’ safari로부터 시작된 surfin 시리즈는 그 획기적이고 경쾌한 사운드가 당시의 캘리포니아와 스스럼없이 어우러졌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Surfin’ U.S.A를 라디오에서 처음 듣고, 이 곡의 아메리카스러운 세련됨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며 비치 보이스를 ‘내 청춘에 있어 하나의 상징 같은 존재’라고 술회했다.
비치 보이스를 소개하는 글의 도입부엔 주로 이런 문구가 붙는다. ‘영국에 비틀스가 있었다면 미국엔 비치 보이스가 있었다.’ 비틀스와 비치 보이스, 모두 한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음악적 요소를 버무렸다는 점만 보아도 둘은 분명 비슷한 구석이 있다. 실제로 비틀스, 그중에서도 특히 폴 매카트니와 (비치 보이스의 초창기 멤버였던)브라이언 윌슨은 서로 창조적인 영향을 주고받은 관계로 팝계에선 유명하다(비틀스의 앨범 Rubber soul과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그리고 비치 보이스의 앨범 Pet sounds는 실제 서로의 음악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된 앨범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현재는 전성기를 지나고 잦은 멤버 교체와 시끌벅적한 바이오그래피를 가진 밴드가 되었지만, 쾌활했던 그 시절의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시대의 표상이라는 점에는 이변이 없다.
닳을 만큼 들어 지루해질 법도 한데 참 한결같이 춤을 추고 싶게 만드는 비치 보이스의 멜로디. 여름을 앞두고 배가 살짝 가려워 오는 기분 좋은 설렘과 긴장을 그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We can’t wait for June!
If everybody had an ocean
Across the U. S. A.
만약 미국 전체가 바다라면
Then everybody be surfin
Like Californi-a
모든 사람들은 캘리포니아에서처럼
파도타기를 즐길 거예요
Youd seem em wearing their baggies
Huarachi sandals too
헐렁한 바지를 입고 허라취 샌들까지 신고요
A bushy bushy blonde hairdo
Surfin U. S. A.
부스스한 금발머리를 하고선
미국 전역으로 서핑을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