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스니커즈의 계절
나는 스니커를 대단히 좋아한다.
1년 중 350일은 스니커를 신고 생활하고 있다.
스니커를 신고 거리를 걷다 보면 나이를 먹는 것 따위는
조금도 두렵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
스니커즈를 신고 거리를 걷다 보면 나이를 먹는 것 따위는
조금도 두렵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니.
생각건대, 지구 상에 이 한 문장보다 더 완벽하게 스니커즈를 정의한 문장은 없을 것이다.
스니커즈는 젊음을 더욱 싱그럽게, 지나간 젊음을 명랑하게 되감는 능력을 지닌다.
예외 없이 아름다운 계절 5월, 바야흐로 스니커즈의 계절이다.
글 라어진 일러스트 권예원
아끼던 운동화가 한 켤레 있었다. 열 번째 생일날 처음 내 품에 들어온 그 운동화를 나는 좋아했다. 흰색 바탕에 초록색 띠가 둘려있고 둥근 앞코엔 가죽이 덧입혀져 있었다. 또래보다 발육이 더딘 열 살 여아의 것이었으니, 치수는 190mm 정도 되었을 것이다.
처음 그 신발을 신고 등굣길에 나서던 아침, 땅만 보고 걸어야만 했다. 내딛는 걸음걸이는 한 번 한 번은 더없이 신중했고, 혹여나 누군가의 발에 밟히진 않을까, 온 감각을 동원해 촉각을 곤두세웠어야 했다. 흡사 막중한 임무를 맡고 지구로 내려온 요원 마냥 신발을 지키려 갖은 애를 썼다. 그 순간만큼은 그 일이 당시 지구 상에서 가장 뜨거웠던 ‘게놈 프로젝트’보다도 내겐 중요했고, 진지함을 요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런 나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진 건 오후의 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다음 수업을 위해 사물함에서 교과서를 꺼내는 순간,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예정에 없던 운동회 단체 연습이 있을 예정이니 지금 당장 운동화를 갈아 신고 운동장에 집합하란다. 아, 이것은 촌스러울 만치 너무 극적인 전개가 아닌가. 당황한 나는 황급히 어디 아픈 곳이라도 없을까 내 몸 구석구석을 훑어봤다. 있지도 않은 미열을 느껴보려 노력도 해보았던 것 같다. 그만큼 나는 그 연습에서 간절히 빠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꾀병을 부려 담임선생님을 속이고 홀로 양호실에 누워있을 만큼 담대하진 못한 열 살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만에 나의 어여뻤던 운동화는 반년은 꼬박 신은 듯한 모습을 하게 된 것이다.
하교 후, 집에 돌아와 앞치마 차림의 엄마와 마주 서니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마치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든 뛰어내리려 만발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마냥 인정사정없이 쏟아져 내리는 눈물이었다. 엄마는 뭐 그런 것으로 우냐는 둥, 울 일도 많다는 식의 대답 대신, 그저 나를 안아주셨다. 왼쪽 귀로 “으구, 우리 딸 얼마나 속상했을까” 라는 외마디가 들려왔다. 당시의 엄마에겐 속상한 하루를 보낸 딸을 안아주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으리라.
엄마는 본인의 소매를 당겨 잡아 나의 눈물을 닦아내셨다. 그리곤 다시 새것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시며 나를 베란다로 데리고 가셨다. 엄마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대야에 물을 받고 가루 세제를 풀어 그 안에 운동화를 담그셨다. 이리저리 조물조물하니, 금세 둥글게 부푼 뽀얀 거품이 일었다. 왠지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모습이었다. 물에 헹궈진 신발은 베란다 난간에 나란히 기대어 세워졌다.
젖은 신발에선 물이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떨어지고 있었는데, 반복되는 장면이 어쩐지 계속 보게 되어 한참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어느새 주방 일을 보고 있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걔도 목욕해서 기분 좋을 거야. 우리 딸도 얼른 손 씻고 와, 간식 먹자.” 이것이 내가 스니커즈를 좋아하게 된 첫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