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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278호

by 월간김현청 posted Jan 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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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278호  


명     칭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太宗十一年李衡原從功臣錄券附函)  


분     류  기록유산 / 문서류/ 국왕문서/ 교령류  


수량/면적  일괄(녹권1축,함1점)  


지 정 일  1993.04.27  


소 재 지  충북 영동군  (국립고궁박물관 보관)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이병진


관 리 자 국립고궁박물관  


일반설명 | 전문설명





이 록권(錄券)은 태종(太宗)이 잠저(潛邸)(동궁)시(時)부터 주야(晝夜)로 익위(翊衛)하고 보좌(補佐)한 제신(諸臣)의 공로(功勞)를 가상히 여겨 포상(褒賞)하고 수여(授與)하는 원종공신록권(原從功臣錄券)으로 태종11년(太宗11年)(1411) 11월(月)에 발급(發給)된 것이다.





이 록권(錄券)은 당시 통훈대부판사재감사(通訓大夫判司宰監事)였던 이형(李衡)에게 발급(發給)된 삼등공신록권(三等功臣錄券)으로 총 83명에게 발급되었다. 이들에게 수여된 포상(褒賞)은 일등(一等)에게는 전지(田地) 30結, 노비(奴碑) 3구(口) 이등(二等)에게는 전지(田地) 25결(結), 노비(奴婢) 2구(口) 삼등(三等)에게는 전지(田地) 15결(結)을 각각 지급(支給)하고 후손에게는 음직(蔭職)을 수여한다는 내용이 기재(記載)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 태종11년 신묘, 11월조(朝鮮王朝實錄 太宗11年 辛卯, 11月條)에 이 사실이 기재(記載)되어 있으니 「호조 청급 원종공신전 계왈 금칭하원종공신 팔십삼인 사전일천육백팔십결 이명사합속 의순고연복궁 내장고등 경기전 구백결급지 부족칠백팔십결 이군자전충지 의태조원종공신예 종지」(「戶曹 請給 原從功臣田 啓曰 今稱下原從功臣 八十三人 賜田一千六百八十結 以名司合屬 義順庫延福宮 內藏庫等 京畿田 九百結給之 不足七百八十結 以軍資田充之 依太祖原從功臣例 從之」)라 하여 이들 공신(功臣)에게 지급(支給)되는 총 사전 일천육백팔십결(總 賜田 一千六百八十結)은 의순고(義順庫) 연복고(延福庫), 내장고등(內藏庫等) 경기전(京畿田) 구백결(九百結)로 지급하고 부족(不足)한 나머지 칠백팔십결(七百八十結)은 군자전(軍資田)에서 충당(充當)하도록 사급되는 포상은 태조(太祖)때 원종공신(原從功臣) 다음에 두번째로 발급(發給)된 록권(錄券)으로 진위이씨문중자손(振威李氏門中子孫)에 의해 소중하게 보관되어오다 문화재지정과 함께 궁중유물전시관(宮中遺物展示館)에 위탁되어 보관되었다.  








* 국보  제292호  





명     칭 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五臺山上院寺重創勸善文)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필사본/ 사본류  


수량/면적  2첩  


지 정 일  1997.01.01  


소 재 지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 월정사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월정사  


관 리 자 박옥생


  


*일반설명 | 전문설명


세조의 왕사(王師)인 혜각존자 신미(慧覺尊者 信眉) 등이 왕의 수복을 빌기 위하여 상원사(上院寺)를 중창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세조가 채색·쌀·무명·베와 철재(鐵材)를 보내면서 그 취지를 쓴 글과, 왕의 하사품(下賜品)을 받고 신미(信眉) 등이 쓴 글로 구성된 2책이다.





한 책은 한문의 원문만으로 되어 있는데 신미(信眉) 등이 쓴 글에는 신미(信眉)·학열(學悅)·학조(學祖) 등의 수결, 세조가 쓴 글에는 세조와 왕세자의 수결과 인기(印記), 이어 효녕대군(孝寧大君) 이하 여러 종실(宗室)과 신하들의 이름과 수결이 있으며, 다른 한 책은 권선문을 한문으로 쓴 다음에 다시 한글로 번역한 것을 붙이고 뒤에 세조(世祖)와 세자의 수결과 인기(印記), 왕비·세자빈·공주 및 외명부(外命婦)의 기명(記名)과 인기(印記)가 있다.





이 글이 쓰여진 시기는 신미 등의 권선문(勸善文) 끝에 「천순팔년랍월십팔일(天順八年臘月十八日)」이라 있으므로 세조 10년(1464) 12월이다. 표장(表裝)은 붉은 색깔로 당초문(唐草文)이 들어있는 비단으로 쌌다.





이 문서는 조선조의 왕가(王家)에서 사찰에 대하여 보조한 기록으로서 귀중할 뿐 아니라, 또한 당시의 학승(學僧)으로 유명했던 신미(信眉)·학열(學悅)·학조(學祖)와 세조(世祖)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료(史料)로서 더욱 중요하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제정한 이후에 판각이나 활자로 발행된 한글문헌은 많이 있으나 직접 묵서(墨書)한 것으로는 이것이 가장 오래된 진적(眞蹟)이므로 초기의 한글 서체를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밖에 세조(世祖)와 세자(世子), 당시의 유명한 학승(學僧)과 수많은 문신(文臣)들의 수결이 있으므로 우리나라 수결(手決)의 연구자료로 크게 이용될 수 있다. 이것은 세조와 세자 및 문신, 그리고 학승들의 수결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오래된 한글 서적(書蹟)이고 보존상태도 완벽한 것이므로 1996년 11월 28일 일제지정문화재 재평가에 의해 보물 제140호에서 국보 제292호로 등급이 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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