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기억의 파편들
어릴 적엔 해가 쨍한 토요일 오후면 늘 엄마를 따라 시장엘 따라나서곤 했다.
꽃내음 밴 시장입구를 지나 아홉 걸음쯤 크게 걸으면 나오는 익숙한 가게가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언제나 뒤늦은 점심밥을 모락모락 짓고 계셨다.
엄마는 아주머니와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시고
엄마 옆의 작은 나는 아주머니가 깎아 주신 사과를 베어 먹곤 했다.
엄마의 팔짱을 끼고 느릿느릿 거닐었던 시장 길은 이만큼이나 선명한데,
그저 푸르던 나이의 작은 나는 언제 이만큼이나 커 버렸을까.
영원과도 같았을 그때의 당연함이 그리운 밤.
글 서인하 사진 민정연
‘그 나라를 보려거든 시장을 가보아라‘는 말이 있다.
제주가 알고 싶어 찾아간 제주의 시장.
그곳에서 만 가지의 맛과 향, 소리 그리고 인정과 마주했다.
나름의 규칙에 따라 높게 쌓인 음식은 각자의 빛깔을 내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모두가 다른 소리를 내고 있지만, 웬일인지 마음이 편하다.
제주시장 안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오신 아주머니.
오랜 시간 꾸려온 양장점을 접고 만둣집을 여셨다는 중년 부부.
수학여행 온 어린 학생들.
십 년 만에 만난 동창과 회포를 풀러 오셨다는 아저씨.
도넛을 반죽하는 모습이 그저 신기한지 눈을 떼지 못하는 귀여운 꼬마.
한 손엔 카메라 한 손엔 팜플렛을 들고선 맛집마다 멈춰서는 관광객들.
난생처음 보는 풍경에 휘둥그레 한 외국인.
오랜만에 주말 나들이를 나온 가족.
화장실 간 주인아주머니를 대신해 가게를 맡아주는 남학생.
길을 물어봤을 뿐인데 귤을 한 움큼 쥐어 주시는 과일 집 할머니.
몇 마디 대화에 어느새 친구가 된 주인과 손님.
오랜 시간 제주도민의 일기를 켜켜이 담아온 제주의 시장은
이렇게 사람 사는 얘기로 가득하다.
제주 시장에서 맛본 음식
제주시 민속오일장 :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제주시 민속오일장
제주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시장인 만큼 먹거리의 종류가 다양하다.
음식들을 봉투에 툭툭 담아주는 모양이 소박하지만 정이 넘친다.
진희네 쑥 호떡
낚싯줄에 붕어빵이 앙증맞게 매달려 있는 게 참 귀여워 발걸음을 멈춘 곳.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착각이었다. 직접 만든 팥과 쑥의 덕분일까? 길거리 음식이라 치부하기엔 아깝다 싶다. 사장님이 부르신 재치 있는 가격이 기억에 남는다.
못 생기면 두 개 1000원 예쁘면 세 개 1000원.
땅꼬 분식
‘지금이 가장 맛있는 튀김’을 맛 볼 수 있는 곳. 굵직굵직한 떡볶이와 바삭한 튀김 그리고 식감 좋은 도넛. 아마도 최고의 간식거리가 아닐까?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 역시 이집의 또 다른 맛이다.
할망 빙떡
제주하면 빙떡은 빼놓을 수 없다. 메밀과 무가 만나니 오묘한 맛이 돈다. 난생 처음 맛본 맛이다. 하지만 자극적이지 않아 좋다. 보통 하루에 천개는 거뜬히 만드신다고 하니 어렴풋이 그 인기가 짐작가지 않는가?
제주의 이색 먹거리가 모여 있어서 관광객들에게 더욱 인기가 좋은 곳 이다.
가지런히 정돈된 음식들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다.
귤 하르방
귤 하르방이라니? 호기심을 마구 자극한다. 시장 초입 길 한켠에 조그마니 자리 잡은 가게에선 손가락만 한 귤 하르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갓 구워진 귤 하르방은 일렬로 줄 맞추어 나란히 세워지는데 그 모습이 참 앙증맞다. 귤 하르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 안엔 귤 크림이 들어있어 감칠맛을 더한다.
또똣
흑돼지 왕만두, 왕 감귤 찐빵, 왕 쑥 찐빵 등의 다채로운 이름만 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곳의 만두와 찐빵은 평범하지 않다. 한 손 가득 쥐어지는 크기이다. 만두소 역시 참 알차다. 고기알갱이도 크고 채소도 싱싱하다. 천 원 한 장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할머니떡집
제주에 들렀다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에 오메기떡이 빠지면 서운한 노릇. 어르신들이 좋아하실만한 비주얼이지만 어린 내 입맛에도 잘 맞다. 매일 손수 팥앙금을 삶아 만드신다는데 그 맛이 깊고 너무 달지 않아 좋다. 말랑말랑한 촉감과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맛에 자꾸만 손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