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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국가인 조선에서 만든 고려사에 불교신봉자들의 사적을 다 기록했는가?

by 월간김현청 posted May 2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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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국가인 조선에서 만든 고려사에 불교신봉자들의 사적을 다 기록했는가?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고려사는 이성계의 역성 혁명 후 조선 태조가 되어 정도전에게 명하여 편찬하기 시작하였는데 고려 왕조실록 등의 문헌을 보고 고려조를 살아온 학자들에 의하여 편찬하였으나 수차 왕명에 의한 재 편찬을 거듭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후 4대 세종께서 “모든 사실은 사실대로 기록하라”는 명을 내려 완성을 보았으나 책을 발간치 못하고 세종이 돌아가신 후 5대 문종원년에 반포한 것이며 고려사절요는 그 이듬해에 반포한 것이다


불교를 국교로 삼아 온 고려를 무너뜨리고 유교를 국교로 삼은 조선을 건국한 후 불교를 철저히 배척한 역성 혁명자들과 권신들이 불교 신봉자들의 사적은 고의로 역사에서 삭제 누락시킨 사실을 여기 그 한 예를 들어 참고에 공하고자 한다 .


한글은 조선 세종께서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창제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집현전 학사들 명단에 한글 창제에 가장 주도적 역할을 한 한 학사의 이름을 역사 기록에서 지워버렸다. 그분이 바로 한글 창제의 모든 자료와 기본을 만든 신미대사(信眉大師)이다.

신미대사는 우리 역사상 가장 최초로 인도 문자인 범어(梵語)를 깨우쳐 한문으로 번역되여 있는 불경을 원문과 대조하여 확인한 대학자로써 집현전 학사를 지냈다.
그의 속성(俗姓)이 영산김씨(永山金氏)로 그 족보에는 엄연히 집현전 학사를 지냈으며 득총어세종(得寵於世宗)즉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기록(조선왕조실록) 어디에도 그런 흔적도 기록해 주지 않았다
이런 시대에 이런 사람들이 만든 고려사에 어찌 불교신봉자들의 사적을 제대로 기록해 주었겠는가?


신미대사의 한글 창제설을 뒷받침하는 몇가지 기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세종이 죽기 전에 신미대사에게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라는 ”법호“를 내렸는데 유생들의 줄기찬 반대로 이를 기록해 주지 않았다


2,한글 창제 몇 달 후 집현전 실무 담당자인 부제학 최만리를 중심으로 한 유학자들의 적극적인 반대 상소의 배경에는 훈민정음의 원리적 근거가 유교가 아닌 불교였고 그 불교의 한가운데 신미대사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3,한글 창제 무렵에 간행된 국가적인 번역 사업이 불교 경전인 24권 분량의 석보상절(釋譜詳節)과 능엄경언해(㘄嚴經諺解),찬불가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등이었고 논어나 맹자 같은 유교 경전은 번역하지 않았다 이는 신미대사의 영향과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4, 조선 7대 세조가 한글 반포 몇 달 후에 속리산으로 신미대사를 찾아 갔으며 후에 임금이 된 후인 세조 4년에 편찬된 월인석보(月印釋譜)는 한글 창제때에 번역 발간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합하여 만든 한글 창제이후 처음 나온 “불경언해서(佛經諺解書)”인데 그“월인석보(月印釋譜)”는 세종의 어지(御旨)가 108자이고 “훈민정음”은 자음과 모음 도합28자와 33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하늘의 28수(宿)와 불교의 우주관인 33천(天)을 상징하는 숫자이며 사찰에서 아침 저녁으로 타종할 때 28번과 33번씩 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5,범어는 고대 인도어로써 불교의 초기 경전은 범어로 적혀 있었고 한자로 번역된 것이 대장경이다
신미대사는 번역본 경전을 보다가 원전을 보고 싶어서 범어를 공부하게 되었고 한글을 창제할 때 범어의 틀을 그대로 적용하였다는 것이다

범어는 50자의 자모음이 있는데 신미대사는 이중에 28개를 선별하여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글에는 다섯 가지의 발음체계가 있는데


1),어금니에서 발음되는 아(牙音;ㄱ ㅋ 등)
2),혀 바닥에서 나오는 설음(舌音;ㄷ ㅌ등)
3),입술에서 나오는 순음(脣音;ㅂ,ㅍ등)
4),이빨 사이에서 나오는 치음(齒音;ㅈ,ㅊ 등)
5),목구멍에서 나는 후음(喉音;ㅎ,ㅇ)의 5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음과 모음은 음과 양을 뜻하고 이 5단계 발음 체계는 5행을 뜻하여 음양 오행으로 이루어 져 있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글은 범어를 기초로 하여 창제하였고 그 범어를 공부한 분이 신미대사였으며 한글창제의 주역을 맡은 집현전 학사가 신미대사였음이 명백하지만 역사는 그의 사적은 고사하고 집현전 학사 명단에도 기록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고려 역사 선양회에서는 이러한 명백한 역사사실을 발굴 조사 확인하여 역사를 바로 잡아 나가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고려역사선양회의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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