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 금이 간 유리 맥주 컵에 뜨거운 커피를 담아 내미는 모습에서 투박함이 묻어났다. 뜨거운 물을 유리잔에 넣으면 깨지는 게 아니냐 했더니, 깨지면 버리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interviewee '큐팩토리' 박상규 디자이너 & 김찬국 인테리어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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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필요한 것은
제주로 내려오신 건 일상의 권태를 느껴서인가요?
찬: 육지에서 인천공항 공사를 하던 중 공사비로 인해 크게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래서 머리도 식힐 겸 전라남도로 백팩킹 여행을 떠나게 되었고요. 그러다 장흥에서 제주로 가는 배편이 있다기에 왔죠. 와서는 무작정 걷다가 좋은 곳을 발견하면 텐트 치고 자고 또 걷고를 반복하며 살았고요. 그러다 처음 게스트하우스란 곳에도 가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감사하게도 인테리어 관련 일거리를 얻게 된 거예요. 숙식을 제공받는 조건으로요. 숙식을 제공받는 조건이었지만 이게 게스트하우스 자리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저로서는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쭉 게스트하우스 마당에 텐트를 치고 살았어요(웃음). 근데 뭐 그런 것도 다 재밌었고요. 결론적으론 겨울이 되어서야 그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집다운 집을 구했어요. 겨울엔 도저히 텐트에서 못 자겠더라고요. 추워서요(웃음).
큐: 저는 퇴사 후 무작정 남쪽을 향해 출발하던 중, 저가 항공표가 저렴하게 나와 제주로 오게 되었고요. 수중에 50만 원만 가지고 있던 터라 내려와선 인테리어 일, 공사장 일, 그림 그리는 일 닥치는 대로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어쩌다 이주를 결정하게 된 거예요?
큐: 아마 많은 분이 비슷한 답변을 하실 거라 생각돼요. 저 역시 하루 이틀 살다 보니 그냥 살기에 괜찮을 것 같았어요. 또 어릴 적부터 무언가 그리고 디자인하는 일에 관심을 두어왔는데, 여기선 그 일을 시작해볼 수 있겠다 싶었고요.
찬: 사실 이주에 있어서 큰 결심을 하면 더 어려운 거 같아요. 실제로 호기롭게 입도해서 금세 포기하고 돌아가는 친구들도 꽤 봤고요. 아마 열 명 중에 여섯 명은 돌아가는 거 같아요.
결정하는데 현실적인 문제도 문제지만, 본인의 마음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두 분은 제주살이에 확신이 드세요? 앞으로도 쭉 살 만한 곳이다. 이런 거요.
큐: 저 같은 경우엔 그 확신이란 게, 저에게 있어서 제주는 확실히 도시보다 좀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곳이라 생각돼요. 아무래도 서울에 비해서 제가 하고 싶은 디자인 작업들이 좀 더 수월하게 풀리는 부분이 있거든요. 이곳에서의 생활을 썩 마음에 들어 하기도 하고요.
삶의 배경이 바뀌면서 어떤 게 변하게 되었나요.
큐: 아무래도 어릴 적부터 갈망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요. 심지어 그 일로 돈을 벌게 되었고, 놀랍게도 생계가 이어지고 있다는 거요. 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도 완전히 바뀌었죠. 서울에선 주말이면 지인들과 만나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낸 반면, 여기선 지극히 정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요. 그림을 그린다거나, 오름에 오른다거나. 또 제주에서 알고 지내게 된 인디뮤지션들이 몇 분이 계시는데, 이분들과 술을 마시며 즉흥적으로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게 제 문화생활에 있어선 큰 변화가 될 수 있겠네요.
찬: 저는 일단 가족이 생겼고요. 집도 생겼고요. 편해졌어요. 여러모로. 좋은 사람들 역시 많이 얻었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예전엔 사람 때문에 고생했는데 지금은 사람 때문에 즐거울 수 있는 게 신기하네요. 그리고 배달음식을 먹지 못 하는 점이요. 그게 무슨 큰 변화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저한텐 되게 큰 변화였거든요(웃음). 근데 이것도 살다 보니 적응한 거 있죠. 지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수준이 됐어요. 덜 먹게 되니 얼마나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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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팩토리
이제 큐팩토리(Q-Factory) 얘기를 좀 해볼까요.
큐: 이름을 소개하자면, 큐(Q)는 저의 별명이고요. 팩토리(Factory)는 제가 앤디 워홀을 좋아하는데 예술을 처음으로 상업적으로 접근한 사람이잖아요. 앤디 워홀이 Factory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저도 그거에 대해서 많이 공감했고요. 저도 제가 만든 작품을 혼자 간직하거나 전시회를 열어 고가에 판매한다거나 하는 걸 지향하는 게 아닌 누구나 쉽게 실용적으로 공감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대량 생산하고자 해요. 예를 들자면 핸드폰케이스, 책갈피, 종이 지갑, 스탠드, 에코 백 같은 거요. 사용자와 빠르고 직접적인 소통을 원하기 때문에 Factory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큐팩토리입니다.
운영하시면서 기억에 남았던 일이 있었나요.
큐: 아무래도 처음으로 물건을 팔았을 때요. 아침 바닷가에 가면 대나무들이 떠내려 와요. 그걸 주워와 제 나름대로 재구성해서 팔았는데, 사실 이걸 돈 받고 팔 수 있을지 저로서도 확신이 없었거든요. 근데 팔리더라고요. 신기했어요. 무척 기쁘기도 했고.
브랜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큐: 최종적으로 제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은요. 저같이 소소하게 시작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좀 더 수월하게 사람들의 눈에 띌 수 있도록 어떠한 플랫폼을 만드는 거예요. 작가들에겐 ‘내가 만든 작품을 어떻게 판매할까’는 늘 고민되는 부분이거든요. 저만의 디자인 샵을 열게 되면 훌륭한 작가들과 인연도 맺을 수 있고, 협업도 할 수 있을 거예요. 모두에게 이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the bom volume 04 <작고도 큰 발견들> '밝고 예쁜 이야기만 하자는 게 아니에요' 중에서
글 라어진 / 사진 김보경